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감독 알렉스 퍼거슨과 박지성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바로 09/10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C 밀란과의 경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당시 1차전 산 시로 원정에서 AC 밀란을 3-2로 꺾으며 승리를 챙겼다. AC 밀란이 전반 3분 호나우지뉴의 골로 먼저 앞서갔지만, 폴 스콜스가 동점골을 터뜨린 후 웨인 루니가 후반에 두 차례 헤더를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었고, 경기 막판 클라렌스 세이도르프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맨유는 3-2의 스코어로 승리를 따냈다.
2차전에서는 맨유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밀란을 4-0으로 완파했다. 웨인 루니가 두 골을 넣었고, 박지성과 대런 플레처도 득점을 기록하며, 두 경기 합계 7-2로 맨유가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맡긴 특별한 임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AC 밀란의 중원을 지배하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완벽하게 봉쇄하라는 지시,
웨인 루니는 당시 경기를 앞두고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했던 지시를 떠올렸다.
“오늘 네 임무는 공을 만지는 게 아니다. 패스를 하는 것도 아니다. 네 임무는 피를로다. 그게 전부야. 피를로"
루니의 언급에 따르면, 당시 피를로는 경기당 110개에 가까운 패스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패스 능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특히 위협적인 것은 전진 패스 능력이었다.
피를로는 풀백에게서 공을 받는 순간, 상대 센터백의 머리 위로 한 번에 공을 넘겨 안드리 셰우첸코나 카카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만드는 패스를 자주 시도했었다.
루니는 이런 패스를 두고 자신이 본 선수 중 피를로가 최고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보았을 때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단순한 ‘마크’만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 패스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1야드도 늦어서는 안 되고, 1초도 늦어서는 안 된다"
박지성은 피를로가 공을 잡는 순간부터 움직임을 제한해야 했고, 특히 그가 전방으로 공을 찔러 넣을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그 요구에 따른 결과는 아직도 충격적이다.
루니는 "피를로가 경기에서 40번도 채 패스를 하지 못했고, 그중 약 95%가 뒤로 향하는 패스였다"라고 언급했다.
평소 중원에서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고 공격의 출발점 역할을 하던 피를로가 전진 패스를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던 것이었고, 그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1차전, 단순히 맨유가 밀란 원정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6/07 시즌 준결승에서 AC 밀란에게 탈락했던 맨유가 다시 산 시로를 찾았고, 당시 박지성의 활약으로 3-2 승리를 거두며 2차전을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던 것이었다. 당시 맨유의 승리를 산 시로에서 거둔 첫 승리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박지성의 역할은 단 하나였다. 골을 넣으라는 지시도 아니었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것도 아니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요구했던 단 하나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피를로를 막는 것"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루니 역시 당시 박지성이 해낸 일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언급했다.
"상대 에이스를 경기에서 사실상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고, 단 한 번의 타이밍 실수도 허용하지 않아야 했다"
특히 피를로처럼 한 번의 패스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박지성은 그날 자신이 공을 많이 잡는 선수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팀에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
박지성의 사례처럼 축구에서 좋은 활약이 반드시 골이나 도움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상대의 장점을 완전히 없애는 것 자체가 최고의 활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AC 밀란을 상대로 한 박지성의 임무는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였다.
퍼거슨이 박지성에게 내린 지시는 단순했다.
“피를로”
그리고 박지성은 그 한마디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피를로는 자서전을 통해 박지성과의 경기를 기억하며 "그는 전자의 속도로 움직였다. 역사상 최초로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선수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경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전히 화제가 되는 경기다.
오죽하면 현지 축구 팬들 사이에서 밈이 탄생하기도 했다.
"피를로가 처음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을 때 이미 박지성은 그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지구는 70%가 물로 덮여있으며, 나머지 30%는 박지성으로 채워져 있다"
"피를로: 나 집에 왔어, 여보 / 아내: 뒤에는 누구야? / 박지성: ☠️"
"경기가 끝난 후 박지성이 피를로의 집까지 따라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피를로는 no-PARKing zone에만 주차할 수 있다"
"산소탱크, 두 개의 심장, Three-Lung Park(세 개의 폐)"
박지성이 왜 대단한 선수였는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 루니의 말, 그에 대해 평가 절하하는 사람들은 박지성의 경기를 단 한 번이라도 보기는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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